3 Dots
▪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발견해 빛을 보게 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1개의 전주곡 “프렐류드”와 5개의 춤곡 “알망드-쿠랑트-사라방드-미뉴에트-지그”로 구성되어 있다.
▪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재녹음해 2024년에 발매한 첼리스트 장 기엔 퀘라스의 두 번째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앨범은 세계적인 현대무용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와 그의 팀 로자스와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 <삶의 한가운데서>로 이미 100여 차례 공연을 올린 퀘라스와 로자스는 이번 앨범에서 바흐의 음악적 수사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며 바흐의 화성적인 움직임을 현대 무용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살아가면서 소리로 충격을 받게 되는 순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늘 듣던 음악을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앞에 펼쳐진 풍경과 감정에 따라 평소 못 듣던 악기 소리나 새로운 음성 등을 발견하는 경험 같은 것 말이다. 마치 항상 지나치던 풍경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여기 이런 소리도 있었구나!” 하는 듯 생경하다. 이처럼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개인의 상태뿐 아니라 외부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살아가다 보면 일상에서 듣지 못했던 낯선 소리를 듣거나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보니 예상과 전혀 다른 소리를 듣는 경험 등이 종종 있다.
클래식 악기 중에도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양의 깊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다. 바로 듬직하게 생긴 현악기, 첼로다. 많은 이들이 음악 프로그램이나 음반에서 첼로 소리를 자주 접한다. 그러나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자가 직접 연주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익히 들어왔던 녹음된 소리와는 어딘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첼로는 중저음을 내는 데 꼭 필요한 현악기다. 총 네 줄의 현을 갖고 있는데 낮은 현에서부터 C-G-D-A 순으로 5도 간격씩 조율을 한다. 기본적으로 낮은 음자리표를 연주하지만 필요에 따라 높은 음자리표까지 넘어갈 수 있다. 그만큼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이 넓다. 대부분 높은 음역대를 소화하는 악기들이 조금 날카롭고 매서운 부분이 있는 반면 낮은 음역대를 소화하는 악기들은 저음 특성상 느슨하게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이 많다. 그러나 첼로는 그 두 사이의 음역대를 소화할 수 있다 보니 청중에게 편안하면서도 흥미로운 소리와 음역대로 다가간다. 음색과 결이 깊고 그윽하며 포근해 마치 공간과 음악,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끌어안는 듯한 소리를 낸다.
청각적 특징 외에 시각적인 특성도 있다. 첼로는 마치 몸으로 끌어안듯 연주해야 하는 악기다. 그렇기에 여러 악기 중에 연주자의 심장과 가장 가깝다. 기본적으로 몸에 가까이 붙어 있어 연주자의 몸이나 활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소리를 그리는 것만 같다.
이탈리아어로 벨 칸토(Bel canto)는 클래식 성악 기법의 하나로 아름답게 노래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최정상의 클래식 기악 연주자들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이 단어가 생각 이상으로 자주 등장한다. 연주자에게도 음과 음 사이를 끊지 말고 원활하게 연주하라는 레가토(legato)라는 기본 원칙이 있다. 그럼에도 기악 연주자들이 벨 칸토를 자주 사용하는 것은 좋은 연주자라면 악기로 노래하듯 표현하는 게 중요하단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악가뿐만 아니라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같은 기악 연주자들도 뛰어난 테크닉을 넘어 노래하듯 연주해야 청중의 마음에 충분히 가닿을 수 있단 사실을 깊이 인식하며 표현하는 것이다.
바흐의 우주를 담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The Cello Suite|BMV 1007~1012)>은 바흐의 쾨텐(Köthen) 궁정 시절인 1720년 또는 1721년 사이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떠한 경로로 작곡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온전한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연습곡으로만 알려져 있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1876~1973)에 의해 새롭게 빛을 보게 되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는 바르셀로나 헌책방에서 악보를 발견한 뒤 오랜 시간 작품을 연구한 끝에 60대에 이르러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이야기할 때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이야기가 꼭 따라붙는 이유다.
현재 바흐가 작곡했던 원본 악보는 소실된 상태이며 현대의 악보들은 몇 가지 사본들을 근거로 출판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바흐의 아내였던 안나 막달레나 바흐(Anna Magdalena Bach|1701~1760)의 사본을 아주 중요하게 참고하는데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1개의 전주곡, 5개의 춤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렐류드(Prelude) 어떤 곡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짧은 형식의 악곡”으로 시작해 “지그(Gigue) 17~18세기의 기악곡으로 모음곡으로 쓰인 무곡”으로 끝난다.
그 사이에 옛 궁중 춤곡 “알망드(Allemande) 느린 2박자계의 무곡”, “쿠랑트(Courante) 프랑스어로 달리다에서 유래된 4분의 3박자의 경쾌한 분위기의 무곡”, “사라방드(Sarabande)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고전무곡”이 있고, 더 현대적인 춤곡인 “미뉴에트(Minuet) 17~18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보급되었던 무용과 무곡”, “부레(Bourre) 17~18세기 2박자계의 프랑스 궁정무용과 그 음악”, “가보트(Gavotte) 16~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프랑스 궁정 풍의 우아한 춤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연주가들은 작곡가의 작품을 마주하며 해석할 때 당시의 시대, 작곡 배경, 작품의 메시지 등을 깊게 탐구한다. 이즈음에서 우리도 한번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바흐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작곡할 당시, 첼로는 하나의 독주 악기로서 인정받고 있었을까? 무반주로 이렇게 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을까? 추론해 보자면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그 당시 첼로는 악기로서 열악한 조건이 많았을 것이다. 음량도 작고 첼로를 바닥에 고정하는 엔드핀도 없어 연주 테크닉적으로도 많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현재의 첼로들은 시대에 맞게 점차 개량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첼로라는 악기에 주목해 이를 위한 무반주 곡을 작곡한 바흐는 첼로라는 악기를 하나의 진정한 독주 악기로서 주목받게 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바흐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긴 다작가이자 대위법을 확립시킨 작곡가다. 대위법은 두 개 이상의 선율을 독립적으로 배치하는 작곡 기법인데, 바흐의 이러한 작곡 기법은 고전파나 베토벤, 모차르트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바흐 스스로 자기 작품에서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바흐가 작곡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로만을 위한 독주곡이기에 연주자 자신이 오롯이 작품과 마주해야만 한다. 거대한 편성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를 주고받는 협주곡 또는 실내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무대에서 연주를 주고받는 동료 연주자 또는 반주가 주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러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이러한 시너지 없이 홀로 공간을 장악해야만 한다.
작곡가 바흐가 어떤 이유에서 첼로를 독주 악기로서 주목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그 가능성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최근에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새롭게 발매되었는데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 기엔 퀘라스(Jean-Guihen Queyras)와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흥미로운 요소 가득한 협업이 눈길을 끈다.
춤추듯 연주하는 첼리스트, 장 기엔 퀘라스
퀘라스는 첼로 독주 연주자로서 현대음악, 실내악 등 전방위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첼리스트이자 프랑스의 유서 깊은 클래식 레이블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의 대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퀘라스는 2007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매했는데 당시 디아파종(DIAPASON)을 비롯해 다수의 클래식 전문 비평 잡지에서 주목할 만한 앨범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퀘라스의 2007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결과적으로 스테디셀러로 남았는데 최근 퀘라스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다시 녹음해 눈길을 끌고 있다.
퀘라스에 따르면 대부분 어린 나이에 첼로 레슨을 받으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자연스럽게 연주하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는 곡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의심하는 시기를 거친다고 한다. 위대한 거장들의 음반을 들으면서 말이다. 자신에게 그저 연습곡에 불과했던 작품을 녹음한 뛰어난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들으며 그간 기계적으로 반복해 온 연습 스킬을 넘어 곡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과정까지 나아가는 과도기를 거치는 셈이다.
추측해 보자면 2007년, 퀘라스가 젊은 나이에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활을 들었을 때도 이른 나이에 이 곡을 녹음하는 일에 갈등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는 바흐로부터 힘의 원천을 찾았고 그 질문의 핵심에 놓인 5번(C minor|BMW 1011) 곡에서 특별한 친밀감을 느꼈다다. 그렇기에 2007년 음반에서 이미 어느덧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탐구하며 발견한 영감들을 풍부히 담아냈다. 참고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는 템포 지시나 운궁법, 셈여림 등 작품에 대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요소가 대부분 적혀 있지 않다. 연주자의 철학과 표현에 따른 다양한 해석과 연주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퀘라스는 이러한 불확실성의 요소들 속에서 뚜렷이 발견한 자신만의 생각을 활기차면서도 유연하게, 첼로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선율에 담아냈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퀘라스의 두 번째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발표됐다. 그의 새로운 앨범에는 세계적인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와 댄스컴퍼니 로자스(Rosas)가 함께한 블루레이 영상이 별도로 포함되어 있는데 사실 퀘라스와 케이르스마터, 그리고 그녀가 이끄는 댄스컴퍼니 로자스는 <삶의 한 가운데서(Mitten wir im Leben sind)>라는 주제로 전 세계에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100회 이상 공연한 전적이 있다.
그렇다면 퀘라스가 2024년 버전 두 번째 녹음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음반 내지를 살펴보면 퀘라스와 케이르스마커가 바흐와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해 나눈 대화가 나온다. 퀘라스는 17년 간의 경력, 그리고 <삶의 한가운데서>의 공연 경험 등으로 자양분을 얻었고 만일 다시 녹음한다면 17년 전과 다르게 무엇을 더 담아내고 싶은지 고민해 왔다고 밝힌다. 화성적인 움직임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다는 그는 바흐의 음악적 수사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토록 깊이 고민할 수 있었던 적은 처음이라고 하며 그것을 우리가 함께 움직임으로 번역하려고 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긴다.
안무가와 함께 움직임으로 번역하려고 한 시도 때문인지 새로운 음반에서는 그의 접근 방식이 이전의 음반보다 더욱 춤에 가까운 듯 들린다. 보잉마저도 춤을 추는 것 같다. 2007년도 음반에서 들을 수 없었던 풍부한 소리, 즉 화성처럼 흐르는 부분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모음곡 전반의 연주 시간이 늘어난 부분들도 보이는데 아마도 케이르스 마커, 로자스와 함께했던 경험이 표현과 해석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사실 퀘라스는 저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1925~2016)가 1976년에 창단한 현대 음악 앙상블 엥테르콩탱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EIC)의 멤버였다.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음악까지 언제나 최고 수준의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독주자로서의 정체성뿐 아니라 실내악에도 능해 함께 활동하고 있는 팀과 동료들이 여전히 많다. 주로 현악 3중주나 현악 4중주 팀들인데 아르칸토 콰르텟(Arcanto Quartett),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레 파우스트(Isabelle Faust),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Alexander Melnikov) 등 걸출한 아티스트와 함께한 음반도 상당수 발매되어 있다.
그가 사용하는 악기도 조금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첼리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 또는 과르네리 델 제수(Guarneri del Gesu), 아마티(Amati) 등의 악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퀘라스는 1696년에 만들어진 죠프레도 카파(Gioffredo Cappa)라는 이탈리아 첼로를 사용 중이다. 퀘라스에 의하면 카파 첼로는 다이나믹스와 어택의 범위가 훨씬 넓고, 테너적인 특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악기와의 관계성을 만들어 가며 서로의 소리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종종 소개해 왔다. 이번 음반에서도 다른 악기를 사용할까 고려하다 다시 카파 첼로를 잡았다. 음반 내지에 적힌 비하인드 스토리에 따르면 저명한 악기의 소리에 의존하는 대신 원래 사용하던 카파 첼로를 사용해 자신만의 접근 방식을 더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했다고 한다.
클래식을 사랑한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
이번 음반에서 퀘라스의 두 번째 녹음이라는 것 외에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세계적인 안무가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와 댄스컴퍼니 로자스(Rosas)가 함께 했다는 점이다. 벨기에 출생인 그는 뉴욕 티시 예술대학(The Tisch School of the Arts)에서 수학한 세계적인 안무가이다. 미국이 주도해 온 포스트모던 댄스에 영향을 받았고 반복과 절제를 중시한 기존의 경향에 자신만의 극적인 표현력을 결합해 현대무용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물두 살에 <파제,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대한 네 가지 움직임(Fase, Four Movements to the Music of Steve Reich)>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으로 세계 무용계에 혁신을 일으켰다. 미니멀한 무대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움직임의 구조와 패턴을 탐구하며 그 과정에 감정과 메시지를 담아내며 몸이 지닌 가능성을 확대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케이르스마커는 1983년 댄스 컴퍼니 로사스(Rosas)를 창단했고,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브뤼셀의 오페라하우스 라 모네(La Monnaie) 소속 안무가로서 다수의 작품을 창작했다. 또한 예술학교 퍼포밍아트 리서치/트레이닝 스튜디오(P.A.R.T.S)를 설립하면서 단숨에 벨기에를 현대무용의 중심지로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케이르스마커는 춤과 음악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고대음악, 현대음악, 팝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구조를 안무와 연결 지어 왔다.
케이르스마커는 바흐의 작품에도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 참여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외에도 로자스와 함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Brandenburg Concertos | BMV 1046~1051)>,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 BWV 988)> 등의 춤을 음악과 함께 연결한 이력이 있다. 춤의 배경으로 존재하는 음악이 아닌 음악과 춤이 온전히 공존하는 작업을 통해 클래식과 춤이 함께 나아갈 방향성을 고민해 왔다.
이처럼 클래식을 사랑한 안무가, 케이르스마커와 함께한 퀘라스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2007년 이후 퀘라스의 음악 철학을 담은 두 번째 결과물이라는 의의 외에도 첼로라는 악기와 현대무용이 지속적으로 만난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공연하기 위해 퀘라스와 케이르스마커, 그리고 로자스의 안무가들이 함께 준비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면 곡마다 표현되어야 하는 감정과 분위기, 동작을 맞추기 위한 박자, 나아갈 방향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세세하게 음악과 춤의 상관성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퀘라스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자양분이 되었고 바흐의 음악적 수사학을 깊이 살피며 두 번째 녹음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음반의 핵심적인 요소를 정리해 보면 춤곡으로 이루어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퀘라스, 케이르스마커, 그리고 로자스가 모여 결국 하나의 춤으로 풀어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음악과 춤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마치 실내악처럼 함께 연주한다. 첼로 선율 위로 흐르는 그들의 몸짓은 역설적이게도 무반주가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케이르스마커는 바흐의 천재성에 대해 최소한의 수준을 최대화하는 능력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흐는 그 당시 악기의 화성적 능력인 다성음악의 모든 가능성을 활용하는 음악을 창조했다. 그리고 음악 안에서 모든 감정을 구현하며 인간적이기에 신성하며, 춤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기하학적 프레임이라고 부를 만한 구조를 제공했다. 케이르스마커의 말처럼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가장 최소한의 수준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광활한 우주와 같다. 그 안에는 바흐가 생각했던 것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작품을 마주하는 예술가들에게 때로 어려움을 안기지만 그렇기에 무한한 상상력과 하나의 세계를 구상한다.
그렇다면 위대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상의 예술가인 우리에게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바흐의 다른 작품들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마태수난곡(Matthäuspassion | BMV 244),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Variationen | BMV 988) 등 수많은 작품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과 예술 작품에게 영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혹시 바흐의 음악을 종종 듣는다면 여러 작품 중 어떤 작품을 어느 시간에 듣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을 주로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듣는 나에게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가 아닌 고요의 음악가이자 아침의 음악가이다. 평범한 우리에게 이렇게나 많은 것을 발견하게 만드는 바흐의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그사이에 놓인 여백과 하늘, 그리고 우주를 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우주 안에서 첼로라는 행성은 “바흐라는 작곡가의 위대성은 가장 인간적인 부분”에서 나온다고 말한 케이르스마커의 말처럼, 바흐의 음악 세계 안에 숨겨진 소박하면서도 찬란한 빛을 반사한다.